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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만 경계가 구불구불할까?

by AtomicGrowth 2026. 9. 25.

왜 여기만 경계가 구불구불할까?
왜 여기만 경계가 구불구불할까?

 

지난 글에서는 지도에 그어진 행정경계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생활권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살펴봤다. 이번 글에서는 지도 속 수상한 돌출부를 추척한다.

주소는 A시에 있지만 지하철과 학교, 직장, 상권은 대부분 B시를 이용하는 곳이 있었다. 지도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지만 사람들의 움직임에는 그 선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시 지도 위의 선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디가 경계인가’가 아니라 ‘왜 경계가 이렇게 생겼는가’​를 살펴본다.

스마트폰이나 GIS에서 행정구역 경계를 켜고 지도를 확대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선을 발견한다.

경계가 잘 이어지다가 갑자기 한쪽으로 툭 튀어나온다.

어떤 곳에서는 바늘처럼 가늘고 길게 다른 지역으로 파고든다.

몇백 미터마다 직각으로 꺾이는 곳도 있고, 뱀이 지나간 것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곳도 있다.

주변을 살펴봐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산도 없다.

강도 없다.

큰 도로도 없다.

그저 아파트와 건물, 논과 밭 사이를 이상한 선 하나가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지도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누가 도대체 경계를 이렇게 그어놓은 걸까?”

하지만 여기서 생각을 반대로 해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누군가가 이렇게 이상하게 그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100년 전에는 이곳에 작은 하천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사라진 옛길이 있었을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마을의 논과 밭이 맞닿던 곳일 수도 있다.

도시개발 과정에서 지형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행정경계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도 위의 이상한 돌출부는 오류가 아니다.

과거의 공간이 현재 지도에 남긴 흔적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이상한 경계 찾기 여덟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지도에서 가장 이상하게 생긴 선 하나를 발견한 뒤 그 선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를 거꾸로 추적해본다.

경계선이 이상하다면 현재 지도만 보면 안 된다

행정구역 지도를 처음 보면 한 가지 착각을 하기 쉽다.

현재 우리가 보는 도로와 건물, 하천을 기준으로 행정구역도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경계선이 현재의 지형과 맞지 않으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큰 도로가 남북으로 곧게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도로 왼쪽은 A동이고 오른쪽은 B동이면 가장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실제 지도를 보면 경계가 도로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옆으로 빠져나간다.

주택가를 가로지르고,

아파트 옆을 지나고,

다시 도로로 돌아온다.

현재의 도시만 바라보면 이유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행정구역의 경계가 현재의 도시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아파트가 있는 곳에 과거에는 논이 있었을 수 있다.

현재 직선으로 정비된 하천이 과거에는 크게 굽이쳐 흘렀을 수도 있다.

도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작은 고개나 능선이 마을을 나누는 기준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서울 양천구와 영등포구 사이 안양천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현재의 하천과 행정경계가 맞지 않는 이유를 과거의 지적도에서 찾았다.

하천을 기준으로 행정경계가 만들어진 뒤 하천정비사업으로 물길이 직선화되고 제방이 만들어졌지만, 행정경계가 등록된 지적도는 과거 형태를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 실제 하천과 경계가 어긋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즉 현재 지도에서 아무 이유 없이 휘어진 것처럼 보이는 경계가 사실은 사라진 옛 물길의 모양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남 합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실제 행정구역 조정으로 이어졌다.

합천군의 2002년 경계조정 자료를 보면 과거에는 하천과 도로, 구거 같은 자연적인 지형을 읍·면 경계로 사용했다. 그런데 제방과 댐이 설치되고 경지정리사업까지 진행되면서 과거의 자연경계가 사라졌다.

그 결과 현재의 토지 이용과 행정구역이 맞지 않고, 심지어 실제로는 하나의 필지인데 지적공부상 두 개 면에 걸쳐 등록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결국 합천군은 여러 필지를 인접 읍·면으로 옮기는 경계조정을 추진했다.

이 사례들을 보고 다시 지도를 보면 경계선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구불구불한 선이 더 이상 이상한 선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단서가 된다.

‘혹시 여기에 예전에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서부터 지도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산·강·마을·필지, 이상한 경계에는 이유가 있다

행정경계가 이상하게 튀어나오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연지형이다.

지난 글에서 살펴봤듯 산에서는 능선이 경계가 되고 강에서는 물길이 경계가 된다.

그런데 능선과 강은 직선이 아니다.

산줄기는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하천은 뱀처럼 굽이친다.

따라서 자연지형을 따라 만든 경계도 자연스럽게 구불구불해진다.

문제는 도시가 개발된 이후다.

산이 깎이고 도로가 만들어진다.

작은 하천은 복개되거나 직선화된다.

논과 밭에는 아파트가 들어선다.

현재 지형에서는 경계의 이유가 사라졌지만 선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옛 마을의 경계다.

오늘날에는 하나의 도시처럼 보이는 지역도 과거에는 여러 개의 작은 마을로 나뉘어 있었다.

각 마을에는 생활공간과 농경지가 있었고, 그것들이 합쳐져 오늘날의 법정동과 행정구역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오래된 마을의 영역이 현대 행정구역에 남아 있다면 경계는 현재 도로망과 전혀 관계없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 번째는 토지와 지적경계다.

이 부분부터 지도는 더욱 복잡해진다.

행정구역 경계와 토지의 필지 경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2025년 발표된 행정구역 경계 연구에서는 연속지적도와 개별지적도, 위성영상, 건축물대장 등을 중첩해 여러 지역의 경계 불일치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도시개발이나 토지구획정리 과정에서 행정경계를 제때 조정하지 못한 경우, 하나의 시설이나 건물이 서로 다른 시·도 또는 법정동에 걸쳐 등록되는 문제가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연구 대상에는 성북구·서대문구뿐 아니라 수원·용인·의왕·안양·영광·고창 사례도 포함됐다.

우리가 앞선 글에서 살펴본 ‘한 아파트인데 행정구역이 다른 곳’도 결국 같은 문제와 연결된다.

경계가 먼저 존재했다.

그 뒤에 도시가 개발됐다.

아파트와 도로는 새로운 계획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옛 행정경계는 그대로 남았다.

그러다 보니 현재 도시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청주시가 2019년 조사한 불합리한 행정구역 경계조정 대상만 57곳이었다.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다른 곳, 지형지물과 경계가 맞지 않는 곳, 하나의 건물이나 사업부지에 여러 행정구역이 중첩되는 곳 등이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지도에서 이상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발견했을 때는 단순히 ‘기형적인 경계’라고 부르고 끝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몇 가지 지도를 겹쳐보면 된다.

현재 행정구역도.

연속지적도.

현재 항공사진.

과거 항공사진.

옛 지형도.

하천과 도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과거 법정동·리의 경계까지.

GIS에서 이 자료들을 하나씩 중첩하면 처음에는 의미 없어 보였던 선 하나가 갑자기 설명되기 시작할 수 있다.

현재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선이 과거 논두렁과 일치할 수도 있다.

주택가 한가운데를 휘어가는 경계가 옛 하천을 따라갈 수도 있다.

이상하게 튀어나온 지역에 과거 하나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현재 지도에서 가장 이상한 선이 과거 지도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선이었던 것이다.

이상한 경계는 지금도 고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계는 한번 만들어지면 영원히 유지될까?

그렇지는 않다.

주민 불편이 크거나 행정업무에 문제가 생기면 실제로 경계를 조정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살펴보면 행정경계가 단순한 지도상의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 사례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과 종로구 무악동 사이의 통일로에서는 2026년 경계 정비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두 지역이 맞닿는 통일로 일부 도로가 지적공부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서대문구는 법령과 과거 행정구역 변천 자료 등을 검토한 뒤 경계를 다시 설정했다. 기존에는 해당 구간의 양방향 도로가 모두 종로구에 속해 있었지만, 정비 후에는 도로 중앙선을 기준으로 현저동 쪽 도로를 서대문구로 등록했다.

1975년 행정구역 조정 이후 약 50년 만에 경계가 현실에 맞게 정리된 셈이다.

군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디오션시티 개발 과정에서 공동주택단지의 토지 지번과 주민등록상 주소가 서로 맞지 않는 문제가 나타났다.

군산시는 2024년 구암동과 조촌동 사이 일부 지역의 경계를 조정하면서 도시계획도로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았다. 시 자료에는 불합리한 행정구역 때문에 재산권 행사와 주민 생활에 불편이 발생한다는 점도 조정 사유로 명시돼 있다.

이 두 사례를 비교하면 행정경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마을과 논,

작은 하천,

산줄기,

옛길 등이 경계였다.

하지만 도시가 개발되면서 그 기준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경계를 정할 때는 현재의 도로나 공동주택, 실제 생활권 같은 요소가 새로운 기준이 된다.

즉 경계는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지만 필요하면 현재의 공간에 맞춰 다시 만들어지기도 한다.

물론 선 하나를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토지의 주소가 달라질 수 있고,

관할 행정기관이 바뀔 수 있으며,

주민과 토지 소유자의 의견도 중요하다.

서로 다른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경계라면 양쪽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지도를 보면 ‘여기만 조금 옮기면 깔끔할 텐데’라고 생각되는 곳도 실제로는 오랫동안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안양과 의왕의 경계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덕원역 주변에서는 아파트 한 단지의 일부 동만 다른 시에 속하는 등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어긋난 사례가 있었고, 경계조정 논의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결국 이상한 경계선 하나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지형의 역사,

마을의 역사,

토지의 역사,

도시개발의 역사,

그리고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해관계까지.

그래서 이번에는 지도를 조금 다른 방법으로 보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지도를 크게 축소해서 보지 말고 최대한 확대한다.

그리고 행정구역 경계를 천천히 따라간다.

그러다 선이 갑자기 꺾이는 곳을 찾는다.

유난히 가늘게 튀어나온 곳도 찾아본다.

직선으로 갈 수 있는데 이상하게 돌아가는 곳도 찾아본다.

그 지점에 표시를 해둔다.

그리고 현재 항공사진을 본다.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면 과거 항공사진으로 넘어간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옛 지형도와 지적도를 찾아본다.

강이 있었는지,

논두렁이 있었는지,

산 능선이 있었는지,

오래된 마을이 있었는지 확인한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경계의 모양과 옛 지형이 맞아떨어질 수도 있다.

그 순간 단순한 지도 검색이 작은 탐사가 된다.

“왜 여기만 이렇게 튀어나왔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선을 따라가다 보니 사라진 강이 나타나고,

없어진 마을이 나타나고,

옛 논과 밭이 나타나고,

도시가 확장된 과정이 나타난다.

어쩌면 행정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도로가 생겨도,

아파트가 들어서도,

하천이 직선으로 바뀌어도,

지도 속 선은 과거의 공간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그래서 앞으로 지도를 볼 때 이상하게 구부러진 경계를 발견한다면 단순히 잘못 그어진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곳에는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도에서 가장 이상한 선은, 과거 지도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이상한 경계 찾기.

지금까지는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왔다면 이번에는 처음으로 경계선의 모양 자체를 단서 삼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봤다.

그리고 다음에는 한 단계 더 재미있는 지점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두 지역이 만나는 경계도 흥미롭지만, 지도에는 세 개 이상의 시·군·구가 한 점에서 만나는 곳도 있다.

그 점에 정확히 서면 한 걸음씩 방향만 바꿔도 서로 다른 행정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다음 이야기는 ‘한 발짝마다 도시가 바뀐다? — 세 개 이상의 행정구역이 만나는 경계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