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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는 A시인데 생활은 B시에서

by AtomicGrowth 2026. 9. 24.

주소는 A시인데 생활은 B시에서
주소는 A시인데 생활은 B시에서

 

지난 글에서는 육지를 벗어나 바다 위의 행정경계를 찾아봤다. 이번 글에서는 주소에 따른 경계에 대해 알아보겠다.

멀리 떨어진 섬들이 하나의 군을 이루기도 하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흩어진 섬들을 하나의 행정기관이 관리하기도 했다. 육지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행정구역은 서로 붙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바다에서는 반드시 맞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다시 육지로 돌아와 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도의 경계선을 찾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하루를 지도 위에 그려보려고 한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어느 방향으로 출근하는지,

어느 지하철역을 이용하는지,

아이들은 어느 학교로 가는지,

주말에는 어느 상권에서 장을 보는지,

병원은 어디로 가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어느 도시로 이동하는지 표시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하루를 지도에 선으로 연결하면 행정구역도와는 전혀 다른 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주소는 분명 A시에 있다.

하지만 출근은 B시로 한다.

지하철도 B시의 역을 이용한다.

장을 볼 때도 B시로 간다.

병원과 문화시설도 B시에 있는 곳이 더 가깝다.

심지어 집 바로 앞에 B시의 학교가 있는데 행정구역 때문에 더 멀리 있는 A시의 학교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우리 동네’는 어디일까?

주소에 적혀 있는 A시일까?

아니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B시일까?

대한민국의 이상한 경계 찾기 일곱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지도에 그어진 행정경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생활권의 경계’​를 찾아가 본다.

하나의 신도시에 세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들어 있다

행정구역과 생활권의 차이를 이해하기 좋은 장소가 있다.

위례신도시다.

위례신도시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 아무런 정보 없이 도시를 돌아다닌다면 이곳이 하나의 도시라고 생각하기 쉽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아파트가 이어지고,

도로와 공원이 연결되어 있고,

상업시설도 하나의 신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도시 이름도 하나다.

‘위례’다.

그런데 주소를 확인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례신도시는 하나의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경기도 성남시, 경기도 하남시​에 걸쳐 조성됐다.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 역시 위례지구의 관할구역을 서울 송파구·경기 하남시·경기 성남시로 명시하고 있다.

지도에서 행정경계를 켜보면 더욱 흥미롭다.

하나의 신도시 내부를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가 지나가고, 경기도 안에서도 성남과 하남이 다시 나뉜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은 그렇게 정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송파구 주민이라고 송파구 안에서만 장을 보는 것도 아니고, 성남시 주민이라고 성남 지역의 상가만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공원도 함께 이용하고,

도로도 함께 이용하며,

상권도 공유한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송파 위례’, ‘성남 위례’, ‘하남 위례’를 매번 구분하면서 생활하기보다 그냥 ‘위례’라는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런데 행정서비스는 그렇지 않다.

주소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달라진다.

행정기관이 달라지고 각종 지방행정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과거 위례신도시가 조성되고 입주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실제로 나타났다. 2017년 보도 당시 위례신도시 약 677만㎡는 송파구 38%, 성남시 41.4%, 하남시 20.6% 정도로 나뉘어 있었고, 하나의 신도시가 세 지자체에 걸치면서 생활권과 행정권의 불일치 문제가 지적됐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질문이 생긴다.

도시의 경계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법적으로는 행정구역이 만든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사람이 만든다.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마트가 어느 도시에 있는지,

가장 편리한 지하철역이 어디인지,

출퇴근하기 좋은 도로가 어느 방향으로 연결되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권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래서 행정지도에서는 세 개로 나뉜 위례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동네가 될 수 있다.

지도에는 세 개의 도시가 있지만,

생활에는 하나의 도시가 존재하는 셈이다.

집 앞 200m 학교를 두고 1.1km 떨어진 학교로 갔던 아이들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다르다고 해서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옆 도시의 대형마트를 이용한다고 불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통이 발달한 현대 도시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행정구역의 경계가 학교, 행정서비스, 도로 관리처럼 주소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영역​과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도 수원시와 용인시의 경계에 있었던 청명센트레빌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행정구역상 용인시에 속해 있었지만 주변은 수원시 영역이 U자 형태로 둘러싸고 있었다.

지도만 봐도 생활권이 어느 방향으로 형성되기 쉬운지 짐작할 수 있는 형태였다.

문제는 아이들의 학교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곳에 살던 초등학생들은 약 200m 떨어진 수원 황곡초등학교를 가까이에 두고도 행정구역 때문에 그 학교를 이용하지 못했다.

대신 왕복 8차로를 건너 약 1.1km 떨어진 용인 흥덕초등학교로 통학해야 했다.

2013년 입주 이후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됐다.

지도에서 보면 행정경계선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그 선은 매일 걸어야 하는 거리가 됐다.

200m와 1.1km.

그리고 왕복 8차로.

이 사례가 생활권과 행정구역의 차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다.

결국 수원시와 용인시는 경계를 조정했다.

2019년 정부는 청명센트레빌아파트 지역을 용인시에서 수원시로 변경하고, 대신 홈플러스 원천점 인근의 수원시 일부 지역을 용인시로 조정하는 내용을 확정했다. 행정안전부도 당시 조정의 목적을 불합리한 행정구역으로 인한 주민 불편 해소라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이전 글들과 중요한 차이가 하나 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상한 경계들은 대부분 ‘왜 경계가 이렇게 생겼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 경계가 사람들의 실제 생활과 맞는가?’

라는 질문이다.

행정경계는 명확해야 한다.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에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활권은 선으로 자르기 어렵다.

직장은 다른 도시에 있을 수 있다.

아이의 학원은 옆 도시에 있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도 옆 도시에 있을 수 있다.

응급실이나 대형병원 역시 행정구역을 따져서 선택하지 않는다.

사람은 주소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리와 시간, 편리함을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현대 도시에서 생활권의 경계는 행정경계보다 훨씬 흐릿하다.

지도에 없는 ‘사람들의 경계’를 그려보면 어떨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지도를 만들어보자.

행정구역도를 한 장 준비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집에 점 하나를 찍는다.

다음으로 자주 이용하는 장소를 표시한다.

직장,

학교,

지하철역,

마트,

병원,

공원,

식당,

문화시설.

그리고 집과 그 장소들을 선으로 연결한다.

어떤 모양이 만들어질까?

행정구역 안에서 모든 선이 끝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수도권이나 광역도시 주변에서는 상당수의 선이 행정경계를 넘어갈 것이다.

실제로 광역교통의 발달과 도시의 연속적인 확장으로 생활권이 행정구역을 넘어가는 현상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23년 과천시와 서울시의 논의에서도 과천 전체 출퇴근 인구 중 약 40%가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수치가 언급됐고, 생활권은 확대되는 반면 행정구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다만 이는 당시 서울 편입 논의 과정에서 서울시장이 제시한 수치와 해석이라는 점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지도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행정지도다.

시·도와 시·군·구, 읍·면·동의 경계를 명확한 선으로 보여준다.

또 하나는 생활지도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출근하고,

어디에서 소비하고,

어디에서 교육받고,

어디에서 여가를 보내는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지도에는 선명한 경계가 있다.

두 번째 지도에는 선명한 경계가 없다.

수많은 사람의 이동선이 도시와 도시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아마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두 번째 모습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특히 지하철 노선을 지도 위에 올려보면 이 현상이 더욱 분명해진다.

서울 지하철과 수도권 전철은 서울시 경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성남, 하남, 광명, 과천, 안양, 의왕, 군포, 고양, 부천, 인천 등 여러 도시가 하나의 철도망으로 연결된다.

도로도 마찬가지다.

지도에서 시·군 경계 레이어를 끄고 도로와 철도만 남겨보면 우리가 평소 인식하는 도시의 모습과 훨씬 비슷해진다.

이것은 GIS로 표현해도 재미있는 주제다.

행정구역 폴리곤 위에 통근·통학이나 교통 이동 데이터를 올려보면 ‘법적으로 나뉜 도시’와 ‘기능적으로 연결된 도시’​를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이번 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지도 속 경계와 사람이 느끼는 경계는 같은가?”

정답을 하나로 정하기는 어렵다.

행정경계에는 행정경계의 역할이 있다.

세금과 복지, 도시계획, 교육, 도로와 공공시설 관리처럼 책임의 범위를 정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선이 필요하다.

반대로 생활권에는 고정된 선이 필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더 가까운 곳,

더 빠른 곳,

더 편리한 곳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교통망이 발달할수록 그 범위는 계속 넓어진다.

그래서 두 경계가 완전히 일치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둘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 불편을 만들어내느냐일 것이다.

옆 도시의 카페를 이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집 앞 학교를 두고 위험한 큰길을 건너 먼 학교까지 가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까운 행정기관을 두고 훨씬 먼 곳으로 가야 한다면 역시 문제가 된다.

그때 지도 위의 선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계가 된다.

이번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계속 지도의 선을 따라왔다.

아파트 한가운데를 지나는 선도 있었고,

도로를 따라가는 선도 있었다.

다른 지역에 둘러싸인 월경지도 있었다.

강을 따라가다가 옛 물길을 기억하는 경계도 있었고,

산의 능선을 따라 여러 도시를 나누는 경계도 있었다.

바다에서는 서로 떨어진 섬들이 하나의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지도에서 선을 지워봤다.

그리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대신 그려봤다.

그랬더니 전혀 다른 도시가 나타났다.

행정구역은 나뉘어 있지만 사람들의 생활은 연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우리 동네’의 범위는 주소창에 적혀 있는 시·군·구보다 훨씬 넓은지도 모른다.

집은 A시에 있다.

직장은 B시에 있다.

아이의 학원은 C시에 있다.

주말에는 D시에 있는 대형마트에 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공간을 하나의 일상으로 살아간다.

주소는 행정구역을 알려주지만, 생활은 나만의 지도를 만든다.

대한민국의 이상한 경계 찾기.

이번에는 지도에 그어진 경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하루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경계를 찾아봤다.

그리고 다음에는 다시 지도 위의 선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선 자체의 모양을 살펴본다.

반듯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갑자기 한쪽으로 길게 튀어나가고, 지그재그로 꺾이고, 다른 지역 안으로 바늘처럼 파고드는 경계가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그렸을까?

다음 이야기는 ‘누가 지도를 이렇게 잘라놓았을까? — 이상하게 튀어나오고 구불구불한 행정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