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이야기에서는 하나의 장소가 신림동이면서 대학동이고, 동시에 관악로 1일 수 있는 이유를 살펴봤다. 이번 글에서는 개발과 수몰 뒤에도 남아 있는 옛 지명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법정동은 토지와 지번을 관리하고, 행정동은 주민과 행정서비스를 관리하며, 도로명주소는 도로와 건물 출입구를 기준으로 위치를 알려준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목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주소를 조사하다 보면 지금은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이름을 만나기도 한다.
오래된 가족관계 서류에는 존재하지만 현재 주소검색에서는 나오지 않는 마을, 저수지 한가운데에 표시된 옛 지명, 아파트와 도로로 가득한 신도시의 과거 지도에만 남은 자연마을이 있다.
마을이 사라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댐이 건설되면서 물에 잠기기도 하고, 신도시와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기존 취락이 철거되기도 한다. 하천 정비와 도로 개설로 마을의 중심이 이동하거나 여러 행정리가 통합되면서 공식 명칭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마을이 사라지면 지도에서도 완전히 지워질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옛 마을의 행정구역은 폐지되더라도 이름은 도로·버스정류장·공원·학교·아파트·시장에 남을 수 있다. 마을의 집과 논밭은 물속에 잠겨도 지적기록과 과거 항공사진, 주민이 간직한 사진과 구술에는 그 위치가 남는다.
사라진 마을을 찾는 일은 현재 지도에 없는 장소를 과거 자료에서 복원하는 작업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지도에서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다른 형태의 공간정보 속에 남아 있는 마을을 따라가 본다.
안동호 아래에는 예안의 옛 마을이 잠들어 있다
지형의 변화로 마을이 사라지는 가장 극적인 사례는 댐 수몰지역이다.
강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면 물이 차오르는 구역 안의 주택·농경지·도로·학교·시장 등이 이전되거나 철거된다. 지도에는 새로운 호수가 나타나지만, 그 물 아래에는 오랜 시간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의 공간이 남는다.
대표적인 곳이 경상북도 안동이다.
한국수자원공사 자료에 따르면 안동댐은 1971년 4월 착공해 1976년 10월 준공됐으며, 총저수용량은 약 12억 4,800만㎥, 만수면적은 51.5㎢에 이른다.
지금의 지도에서 이 지역을 보면 거대한 안동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과거 지도에서는 강을 따라 농경지와 마을, 길이 이어져 있었다. 특히 예안면 일대에는 면사무소·지서·우체국·학교·시장 등을 갖춘 지역 중심지가 존재했다.
안동시의 마을 유래 자료에 따르면 옛 월곡면의 중심지였던 마을은 안동댐 건설로 일부가 수몰됐고, 남은 지역은 1974년 월곡면이 폐지되면서 예안면 등에 편입됐다. 즉 물리적인 마을의 수몰과 행정구역의 폐지가 함께 일어난 것이다. 마을나들이
이 사례에서 사라진 것은 주택 몇 채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장을 보던 시장과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생활권,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던 길이 함께 사라졌다. 물이 차오른 뒤에는 기존의 이동 경로도 끊어졌고, 호수를 피해 새 도로가 만들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안동시 공식 관광자료는 현재 도산면 서부리의 예끼마을이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옛 예안마을 주민들의 이주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설명한다. 옛 마을의 주민들이 새로운 터에 정착하면서 과거의 생활공동체와 지역문화를 이어간 것이다. andong.go.kr
여기서 ‘예안마을은 사라졌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다.
옛 마을의 위치와 건물은 물속에 잠겼지만 사람과 이름은 새로운 마을로 이동했다. 과거의 예안은 현재 지도에서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이주마을과 주민의 기억, 옛 사진과 행정기록을 통해 계속 존재한다.
문화유산도 모두 물속에 남겨진 것은 아니다.
안동시립박물관의 연혁에는 안동댐 건설에 따른 수몰지역 문화재를 옮겨 민속경관지를 조성한 기록이 남아 있다. 마을 전체를 옮길 수는 없었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과 문화재 일부는 새로운 장소로 이전됐다. 안동시립박물관 소개
안동시는 현재 ‘안동 수몰마을 생활사 아카이브’도 운영한다. 댐 건설로 물속에 잠긴 마을의 풍경과 주민의 생활 모습을 사진으로 복원하고 보존하는 디지털 기록관이다. 안동시 홈페이지
따라서 수몰마을을 찾을 때 현재 지형도만 봐서는 안 된다.
현재 지도에는 호수와 선착장, 새로 만들어진 도로만 보인다. 옛 마을을 복원하려면 담수 이전의 지형도, 지적도, 항공사진, 수몰지역 보상자료, 주민 사진과 구술기록을 함께 봐야 한다.
특히 저수지는 계절과 수위에 따라 물의 경계가 달라진다.
현재 위성영상에서 드러난 땅이 항상 수몰 이전 마을의 지표면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퇴적물이 쌓였거나 사면이 깎였을 수 있고, 댐 공사 과정에서 지형이 변형됐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물 아래의 마을은 하나의 지도만으로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여러 시기의 지도와 기록을 겹쳐야 비로소 과거의 길과 마을 중심지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가 마을을 덮어도 이름은 골목과 시설에 남는다
마을이 사라지는 과정이 항상 댐처럼 극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는 마을이 물속에 잠기는 대신 새로운 건물과 도로 아래로 들어간다.
논밭 사이에 있던 자연마을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고, 도로와 아파트가 들어선다. 기존 주택은 철거되고 필지가 다시 나뉜다. 몇십 년이 지나면 그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려워진다.
서울 양재동의 게리마을과 동산마을이 좋은 사례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에 따르면 게리마을은 마을 지형이 게 모양과 비슷해 ‘게리’ 또는 ‘계리’라고 불렸으며, 용인에서 양재동으로 이어지던 옛 도로 주변에 자리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큰 피해를 입자 많은 주민이 잔디마을·경진말·동산마을 등 주변 지역으로 옮겨갔다. 동산마을 역시 홍수 이후 게리마을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었다.
이후 양재동 일대는 크게 달라졌다.
경부고속도로가 놓이고 도시가 확장됐으며, 1970년대 말에는 고속도로 주변 마을을 대상으로 취락구조개선사업이 진행됐다. 서울역사편찬원은 당시 이 일대의 농촌주택들이 양옥주택으로 바뀌었고, 오늘날에는 그 시기의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현재 지도를 보면 게리마을이라는 행정구역은 나타나지 않는다.
동산마을이 있던 자리도 공원과 주택가, 도로 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마을의 이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게리마을을 기억하는 표석이 남아 있고, 과거 동산마을이 있던 양재근린공원에는 동산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이 두 표석을 양재동의 지역사를 확인하는 답사 지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산마을이라는 이름은 현재의 도시시설에도 남아 있다.
서초구는 양재동의 공영주차장 가운데 하나를 ‘동산마을 공영주차장’으로 운영한다. 과거 자연마을의 영역과 현재 주차장의 경계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라진 마을의 이름이 새로운 도시시설에 이어진 사례다.
이런 지명은 도시의 기억을 보존하는 작은 표지판과 같다.
마을이 철거되고 행정구역에서 이름이 사라져도 공원·주차장·시장·학교·버스정류장·도로에 옛 이름이 남는다. 현재 주민은 그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 채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라진 마을을 찾을 때는 현재 지도의 ‘마을’ 항목만 검색해서는 부족하다.
동일한 이름이 붙은 공원이나 어린이집, 마을버스 정류장, 공영주차장, 작은도서관을 함께 찾아봐야 한다. 현재 시설의 명칭 속에 과거 지명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름이 남았다고 해서 현재 시설의 위치를 옛 마을의 정확한 중심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기념 표석은 도로 공사나 공원 조성 과정에서 접근하기 좋은 장소로 옮겨졌을 수 있다. 주차장이나 아파트가 옛 마을 이름을 사용해도 실제 옛 취락의 범위보다 넓거나 떨어져 있을 수 있다.
이름은 중요한 단서이지만 좌표 그 자체는 아니다.
옛 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범위를 확인하려면 과거 지도와 항공사진을 함께 비교해야 한다.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을 다시 복원하는 방법
사라진 마을을 QGIS에서 복원하려면 현재 지도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먼저 현재 지도에서 남아 있는 지명 단서를 수집한다.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원·도로·버스정류장·주차장·학교·경로당·보호수·표석을 점으로 표시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마을 유래 자료와 향토문화 자료도 함께 확인한다.
그다음 국가기록원이 제공하는 옛 지명검색을 이용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는 시·도, 시·군·구, 읍·면·동을 순서대로 선택해 과거 지명과 관련 기록물을 검색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현재 행정구역에서 사라진 면이나 리의 이름을 추적할 때 유용하다.
서울 지역이라면 서울역사편찬원의 서울 지명사전도 활용할 수 있다.
이 자료에는 현재 행정동뿐 아니라 과거 자연마을·골짜기·고개·나루터의 위치와 명칭 유래가 수록돼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지도에서 찾기 어려운 ‘가는골’ 같은 마을과 골짜기가 어느 지역에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과거 지형도와 항공사진을 확보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은 국토정보플랫폼을 통해 수치지도와 항공사진 등 다양한 공간정보를 제공한다. 지역과 촬영연도에 따라 자료 보유 상황은 다르지만, 개발 전후 항공사진을 구할 수 있다면 마을의 변화 과정을 가장 직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댐 수몰지역이라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레이어를 구성할 수 있다.
현재 정사영상 → 현재 수계 경계 → 담수 이전 지형도 → 과거 지적도 → 옛 도로 → 마을·학교·시장 위치
도시개발지역이라면 구성을 조금 바꾼다.
현재 정사영상 → 현재 도로·건물 → 개발 이전 항공사진 → 과거 지번 → 옛 마을 지명 → 현재 남아 있는 표석과 시설명
종이로 제작된 옛 지도에 좌표정보가 없다면 QGIS의 지오리퍼런서를 이용해 현재 지도에 맞춰야 한다.
교차로·하천 합류점·산봉우리·오래된 교량처럼 과거와 현재에 모두 존재하는 지점을 기준점으로 선택한다. 이미 사라진 건물이나 도로 모서리를 기준점으로 사용하면 오차가 커질 수 있다.
또한 옛 지도의 선을 지나치게 정확한 경계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과거 지도는 제작 축척과 목적에 따라 마을을 하나의 점이나 글자로만 표시했을 수 있다. ‘○○마을’이라는 글자의 위치가 실제 취락 중심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지도 변형과 지오리퍼런싱 오차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복원 결과는 다음과 같이 단계별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위치가 문헌과 여러 지도에서 일치하는 곳은 ‘추정 중심지’
-옛 지형도에서 취락이 확인되는 범위는 ‘추정 마을 범위’
-주민 구술로만 확인되는 장소는 ‘구술 위치’
-현재 남은 비석·공원·시설은 ‘지명 계승 지점’
이렇게 구분하면 옛 마을의 실제 위치와 현재 이름이 남은 위치를 혼동하지 않을 수 있다.
사라진 마을을 찾는 작업의 목적은 과거의 경계선을 억지로 정확하게 그리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았고, 어떤 길을 이용했으며, 마을이 사라진 뒤 그 이름과 기억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기록하는 데 의미가 있다.
안동의 옛 예안마을은 물속에 잠겼지만 이주민이 자리 잡은 예끼마을과 생활사 아카이브에 남아 있다.
양재동의 게리마을과 동산마을은 도시의 모습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표석과 공영주차장 이름에 흔적을 남겼다.
마을은 건물의 집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계와 생활권, 장소에 붙인 이름과 기억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집이 철거되고 행정구역이 폐지돼도 마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재 지도에서 보이지 않을 뿐, 다른 시대의 지도와 기록 속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수몰과 도시개발로 사라진 마을이 과거 지도·사진·표석·시설명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살펴봤다.
다음에는 물속으로 사라진 땅이 아니라, 반대로 바다 위에 새롭게 나타난 땅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바다를 메워 새로운 육지가 생기면 그 땅은 어느 시·도, 어느 시·군·구에 속하게 될까? 기존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의 땅이 되는지, 매립사업을 시행한 기관이나 먼저 이용한 지역이 관할하게 되는지, 지도에 없던 경계는 어떤 절차로 만들어지는지 살펴볼 차례다.
다음 이야기는
「바다를 메우면 새 땅은 누구의 것이 될까? — 매립지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행정경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