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에서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시가 달라지는 곳을 찾아봤다.
길 한쪽은 안양시인데 횡단보도를 건너면 의왕시가 되는 것처럼, 행정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더 이상한 경계를 찾아보려고 한다.
도로를 건너 다른 도시로 가는 정도가 아니다.
지도에서 어느 지역의 경계선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그 지역이 끊어진다. 그런데 한참 떨어진 곳에서 다시 같은 행정구역이 나타난다.
마치 본토에서 작은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인다.
그 작은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행정구역을 지나가야 한다.
‘우리 지역의 땅인데 우리 지역을 통해서는 갈 수 없는 곳.’
이런 곳을 월경지(越境地)라고 부른다.
월경지는 특정 행정구역에 속하면서도 본래의 구역과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땅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사용된 용어이며, 오늘날 지리학에서 사용하는 ‘exclave’와 대응하는 개념이다.
반대로 어떤 땅이 하나의 다른 행정구역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면 그것을 위요지(圍繞地·enclave)라고 한다. 월경지가 ‘본체에서 떨어져 나간 땅’의 입장에서 바라본 표현이라면, 위요지는 ‘다른 지역 안에 둘러싸여 있는 땅’이라는 공간적 관계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하나의 장소가 상황에 따라 월경지이면서 동시에 위요지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이상한 땅은 왜 생긴 것일까?
대한민국의 이상한 경계 찾기 세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지도 위에 숨어 있는 ‘육지 속의 섬’을 찾아가 본다.
내 땅으로 가려면 남의 동네를 지나야 한다
월경지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섬을 떠올리는 것이다.
섬은 바다 때문에 육지와 떨어져 있다.
월경지도 비슷하다.
다만 바다가 아니라 다른 행정구역이 사이를 막고 있다.
예를 들어 A시에 속한 작은 마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이 마을과 A시의 본체 사이에 B시가 자리 잡고 있다.
A시청에서 그 마을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려면 반드시 B시를 통과해야 한다.
주소는 A시인데 실제 이동에서는 B시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월경지를 ‘육지의 섬’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형태의 행정구역이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흥미로운 사례 가운데 하나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이다.
이서면은 원래 완주군의 다른 지역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주시가 성장하면서 주변 지역들이 차례로 전주시에 편입됐다. 특히 1989년 완주군 구이면의 중인리·용복리·석구리·원당리 등이 전주시에 편입되면서 이서면은 완주군의 다른 지역과 육상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형태가 됐다. 결과적으로 완주군 소속이면서 본체와 떨어진 지역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도를 확대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주소에는 분명히 ‘완주군’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완주군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전주시 지역을 거쳐야 한다.
행정적으로는 완주군.
생활공간으로 보면 전주와 매우 가까운 곳.
행정경계와 실제 생활권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모습은 앞선 두 편에서 살펴본 경계와도 연결된다.
첫 번째 글에서는 하나의 아파트가 두 행정구역으로 나뉘었다.
두 번째 글에서는 하나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도시가 달라졌다.
이번에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행정구역 자체가 공간적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더 작은 규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
신도시를 개발하거나 행정동을 새롭게 만들면서 기존 법정동의 일부 토지가 주변 지역과 분리되는 경우가 있다.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개발 과정에서도 행정구역 개편의 결과 기존 지역의 일부가 주변 행정구역에 둘러싸이는 독특한 형태가 나타난 사례가 알려져 있다.
산업단지 개발도 이런 경계를 만들 수 있다.
광양만의 율촌1산업단지는 순천시 해룡면, 여수시 율촌면, 광양시 광양읍이라는 서로 다른 행정구역이 맞물리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광양읍 세풍리 일부는 광양시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순천시 해룡면을 거쳐야 하는 월경지 형태가 됐다.
결국 월경지는 아주 오래된 역사의 흔적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신도시나 산업단지를 개발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애초에 행정구역을 깔끔하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행정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상한 경계에는 오래된 역사가 숨어 있다
오늘날 지도를 보면 행정구역은 컴퓨터로 정확하게 그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누군가가 대한민국의 지도를 펼쳐놓고 효율적으로 구역을 나눴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행정구역의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금의 경계 아래에는 오래된 마을과 군현의 경계가 겹겹이 쌓여 있다.
특히 ‘월경지’라는 말 자체가 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표현이 아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소속 읍과 떨어져 다른 지역에 위치한 군현의 특수한 구역을 월경지라고 불렀다. 즉, 지금 우리가 지도에서 신기하게 바라보는 현상이 수백 년 전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왜 이런 땅이 생겼을까?
옛날 행정구역은 오늘날처럼 단순히 지도상의 거리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마을의 역사와 토지 관계, 산과 하천 같은 지형, 교통로와 생활권 등 여러 요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행정구역도 계속 변했다.
어떤 지역은 다른 군으로 편입됐고, 여러 마을이 하나로 합쳐졌다.
도시가 성장하면 주변 군의 일부 지역이 도시로 편입되기도 했다.
그런 변화가 반복되다 보면 본래 이어져 있던 행정구역의 중간 부분만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나머지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복잡한 경계를 근대적인 행정체계에 맞춰 정리하기도 했다.
실제로 근대 토지조사 초기에는 군·면·리·동의 통폐합과 함께 기존의 월경지와 복잡하게 파고든 경계를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관련 연구에서도 당시 행정구역 변경 과정에서 월경지와 ‘두입지’ 같은 불규칙한 영역을 정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09년 행정구역 경계 관리에 관한 연구에서도 기존 지적도를 기반으로 행정경계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경계를 별도로 정비하지 않아 공백·중복·월경지 등 여러 문제가 남아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즉 우리가 현재 지도에서 발견하는 이상한 경계는 단순한 ‘지도 오류’라고 볼 수 없다.
그중 상당수는 행정구역이 변화해온 과정의 흔적이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군이 시가 되고,
시가 커지면서 주변 마을을 편입하고,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동의 경계가 바뀌고,
산업단지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행정경계가 필요해진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경계를 항상 직선처럼 깔끔하게 만들 수는 없다.
오히려 이상하게 생긴 경계선을 따라가 보면 그 지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역으로 추적할 수 있다.
그래서 월경지는 단순한 지리적 호기심거리가 아니다.
어쩌면 지도 위에 남아 있는 지역의 역사에 더 가깝다.
월경지는 사라지는 것일까,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월경지를 처음 알게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행정하기 불편할 텐데 그냥 가까운 지역에 편입하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많은 월경지나 위요지 형태가 사라졌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의 흥미로운 사례들이 있었다.
도시가 주변 군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시가 되면서 도시 전체가 주변 군에 둘러싸이는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읍이 성장해 시로 승격하면서 기존 군에서 분리되는 방식이 흔했다.
이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가 주변의 군 지역에 둘러싸이거나, 반대로 남아 있는 군 지역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과거 시흥군은 1973년 중심지였던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분리되면서 군역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는 독특한 형태가 됐다. 이후 주변 지역의 도시화가 계속되면서 1989년 군포시·시흥시·의왕시 등이 각각 분리·승격됐고 결국 옛 시흥군이라는 행정구역 자체가 사라졌다.
1995년을 전후한 시·군 통합도 이런 복잡한 경계를 크게 줄였다.
도시와 주변 군을 하나의 도농복합시로 통합하면서 서로 둘러싸거나 분리돼 있던 행정구역이 하나로 합쳐진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이 있다.
월경지는 과거의 유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는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가 생긴다.
산업단지가 만들어진다.
새로운 도로가 들어선다.
바다를 매립해 새로운 땅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행정경계를 정해야 한다.
새만금처럼 이전에는 바다였던 곳에 방조제와 매립지가 만들어지면서 어느 지방자치단체에 속하는지를 새롭게 결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새만금 2호 방조제의 행정구역을 정하는 과정에서는 향후 매립지와 연결될 공간구조 등을 고려해 경계가 획정됐고, 그 결과 지도상 월경지 형태가 나타난 사례도 있다.
즉 월경지는 오래된 행정구역이 남긴 흔적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시개발이 만들어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사실이 꽤 흥미롭다.
나는 처음에 월경지를 ‘옛날에 행정구역을 이상하게 나눠서 남은 땅’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도를 들여다볼수록 생각이 달라진다.
행정경계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도시와 함께 계속 변한다.
어떤 경계는 사라지고,
어떤 경계는 이동하며,
어떤 곳에서는 전혀 새로운 경계가 태어난다.
그래서 지도를 오래된 지도와 비교해 보는 일이 재미있다.
현재 지도에서 이상한 경계를 하나 발견한다.
20년 전 지도를 찾아본다.
50년 전 지도를 찾아본다.
가능하다면 100년 전 지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러면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선 하나가 조금씩 설명되기 시작한다.
‘아, 여기에 원래 마을이 있었구나.’
‘이 지역이 나중에 다른 도시로 편입됐구나.’
‘도시가 커지면서 이 부분만 남았구나.’
그 순간 지도는 단순한 길 찾기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록이 된다.
지난 첫 번째 글에서는 아파트 단지를 가르는 경계를 찾아봤다.
두 번째 글에서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달라지는 도시를 살펴봤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경계가 훨씬 더 이상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월경지와 위요지를 찾아봤다.
세 가지를 이어서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사람들의 생활공간은 계속 변하지만 행정경계는 그 변화와 항상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바로 그 차이에서 이상한 경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제 시선을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만든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경계를 찾아왔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경계로 사용했던 것이 있다.
강이다.
지도에서는 강을 따라 시·군 경계가 이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강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홍수가 나고 물길이 바뀌며 하천의 모습도 오랜 시간에 걸쳐 달라진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강의 위치가 바뀌면 행정구역의 경계도 함께 움직일까?
대한민국의 이상한 경계 찾기.
다음에는 ‘강은 정말 완벽한 경계일까? — 물길과 행정경계가 어긋난 곳’을 찾아가 본다.